[15.12.23] 대한민국의 첫 재정착 난민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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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12-31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15893
대한민국의 첫 재정착 난민 도착
?미얀마 난민들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손을 흔들고 있다.
2015년 12월 23일 대한민국 인천 (유엔난민기구) - 책과 텔레비젼을 통해 한국어를 익히며 재정착 준비를 시작한 22명의 미얀마 난민들이 한국 정부의 ‘시범 재정착 난민 제도’의 첫 대상자로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수요일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도착한 네 가족의 난민들은 길게는 19년동안 태국의 메라 (Mae La)와 움피움 (Umpium) 난민촌에서 생활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재정착은 그들의 유일한 집을 떠나 낯선 언어, 날씨, 그리고 사람들 곁에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엔난민기구가 그의 가족이 한국 난민 재정착 제도의 시행자로 선정되었다고 알려주었을 때, 쿠투에게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수요일 (12월 23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 44세의 난민은 “한국에서는 내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며, “매우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정부는 유엔난민기구가 추천한 난민들 중,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될 가능성과 난민 개인의 의지에 중점을 두고 재정착 대상자들을 심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난민들은 한국에서의 재정착이 확정된 후 자녀들에게 한국 문화와 예절을 가르치고 텔레비젼과 책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영준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장은 “오늘은 난민과 한국 양측 모두가 중요한 일진보를 한 날”이라며, “난민들은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얻었고,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분담하는 일진보를 하였다”고 말했다.
쿠투는 1988년 미얀마 국경 근처에서 정부군와 소수민족 사이에 분쟁이 터지자 태국으로 피신했다. 이후 벌목을 하던 중 오른 발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고, 메라 난민촌에서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같은 날 입국한 타인자우는 한국에서 목공일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네 자녀를 둔 34세의 아버지인 그는 여섯 살 때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태국에서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는 일거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미얀마에서의 삶은 전쟁 때문에 힘들었고 태국에서는 우리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어려웠다”며, “이제 한국에서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 두번째로 난민 재정착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으며, 금번 시범사업이 끝나는 2017년까지 앞으로 2년간 60명의 난민을 더 수용할 방침이다.
난민 수용과 인정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이 재정착 제도를 시행하게 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도약이다. 한국정부는 1994년부터 자발적으로 도착한 난민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주로 파키스탄, 이집트, 중국 등의 나라에서 약 13,000 명의 사람들이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하였다.
더크 헤베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오늘은 모국에서 끔찍한 일들을 경험하고 태국에서 오랜 난민 생활을 한 재정착 난민들이 매우 중대한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는 날”이라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한국사회에 통합되는가의 여부는 한국 지역사회의 환대에 크게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네 가족의 재정착 난민들은 입국 후 인천에 위치한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6개월에서 12개월동안 머물며 한국어, 문화, 직업 기술 등을 익히며 한국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법무부는 이번 재정착 시범 난민들이 기존의 미얀마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경기도 일대에 살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헤베커 대표는 "유엔난민기구는 한국의 난민 재정착 제도가 점차 다른 지역 난민과 전 세계적인 대규모 난민사태의 희생자들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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