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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를 꿈꾸던 시각장애인 난민 소년의 이야기, 그 후

등록일 2019-07-11  l  조회수 1880




사진작가를 꿈꾸던 시각장애인 난민 소년의 이야기, 그 후


지난 2017년, 시인이자, 래퍼이자, 사진작가인, 재능이 충만한 시리아 청년 하니 알 모울리아(Hani Al Moulia)의 이야기를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난 글 보러가기: https://blog.naver.com/unhcr_korea/220946657842)







눈 바로 앞에 있는 사물만 보이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하니는 난민 생활 중에도 휼륭한 사진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요.





오늘은, 레바논 난민촌에 살던 하니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 UNHCR/Hani Al Moulia 시각장애인 사진작가이자 시리아 난민 소년이던 하니가 레바논 난민촌에서 촬영한 작품

먼저, 편지 한 통을 소개해드립니다.





유엔난민기구 멀티미디어 콘텐츠 팀은 2013년부터 시리아 난민 하니 알 모울리아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 멀티미디어 콘텐츠 팀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리어돈(Christopher Reardon)은 시리아 내전 8주기이던 지난 3월, 시리아 홈즈(Homs)를 방문해 이제는 자신의 친구가 된 하니가 살던 집을 찾았습니다. 내전이 휩쓸고 간 홈즈 곳곳이 그렇듯, 하니의 집도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리어돈 씨가 하니에게 쓴 편지입니다.

하니에게

오늘 네 집에 들렀단다. 하지만 너는 없었지. 집은 텅 비어있었어. 함께 차를 마실 네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고, 네 형제와 누이들도 보이지 않았단다. 네 이웃들도 떠나고 없더구나.





노크를 하려고했지만, 집 현관문이 온데간데 없었지. 현관문은 물론이고 문을 벽에 고정시켜주었을 경첩과 문틀도 모두 사라졌어. 바닥에는 온통 건물 잔해가 흩어져 있었지.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그곳은 폐허 그 자체더구나.



알겠지만 이곳과 8시간의 시차가 나는 너희 가족의 캐나다 새 집에 대한 얘기는 아니야.

6년 반 전, 네가 난민이 되어 떠나야 했던 곳, 그리고 네가 자란 시리아의 2층 집을 말하는거란다.

나는 지금 네 고향 시리아 홈즈(Homs)에 있단다. 레바논에서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이곳에 대해 얘기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너는 한 레바논 농부 소유의 땅에서 1,000여 명의 시리아 다른 난민들과 함께 야영 생활을 했었지. 시리아는 분쟁이 한창이었고, 너는 피난하기 전 어머니가 학교에 가지 말라고 얼마나 너에게 사정했는지 얘기해주었지. 어머니는 네가 총에 맞거나 참수를 당하지는 않을까 공포스러웠을거야. 네 삼촌이, 이모가, 사촌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너는 함께 랩을 만들고 함께 시를 썼던 친구가 실종됐다는 얘기도 했었지. 너는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나와 내 동료들은 네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위험을 피해 수 년간 시리아 내 다른 지역에서 고단한 생활을 하다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 대부분은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온단다. 파괴의 어마어마한 규모는, 지난 여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던 이라크 서모술(West Mosul)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사람들은 분쟁에 지쳤고, 인내해왔던 것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그러면서도 또 새로운 시작을 고대하고 있지.

ⓒ UNHCR/Christopher Reardon (왼쪽부터) 시리아 홈즈의 하니의 집 앞 골목, 하니 가족이 살던 집, 하니 가족이 살던 집의 현관

오늘 만난 한 가족은 지난 수년간 일자리와 거처를 찾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몇 개월 전,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온 이 가족은 남겨두고 떠난 것들이 도난당했거나, 불타거나,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매우 절망했다고 하는구나.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잔해로 가득차 있었다고 해.




하지만 이 가족은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모든걸 제자리로 되돌려 놓고 있단다. 내 동료의 도움으로 자히드 씨와 아들들은 가족을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켜줄 창문과 문을 만들었지. 대장장이와 집수리를 직업으로 하던 지하드 씨는 뭔가를 더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했어. “여기 있는 집들 모두 내가 고치겠어요.”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골목 여기저기 폐허가 된 건물을 가리키며 자히드 씨가 말했어. “장비만 주십쇼.”

그러고 나서 지하드 씨와 아들들은 나를 지붕으로 데려가 비둘기를 보여줬단다. 12살 된 압달말렉이 새장을 열자 40마리의 비둘기들이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폐허가 된 도시를 평화롭게 날아갔단다. 날아갔던 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본 후에 네가 살던 곳까지 차를 얻어타고 가 네가 걷던 거리를 걸었단다. 주차된 차가 단 한대도 없었어. 마치 모두가 동시에 짐을 챙겨 휴가를 떠난 것 처럼 보였단다. 하지만 너나 네 이웃 누구도 휴가를 떠난건 아니었지.

분쟁이 시작된지 8년이 지난 지금, 네 조국 절반은 집을 떠났다. 강제 실향 상태를, 그것도 여러번 겪었지. 560만 명의 시리아인이 이웃 나라에서 여전히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어. 100만 명 이상은 시리아 안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고. 너처럼 다른 국가에서 또다른 기회를 얻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아주 적단다.

네 거리에는 길 잃은 고양이도, 강아지도 없었단다. 새들조차 찾지 않았지.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멀리서 들려오는 금속을 자르는 톱소리 뿐. 하니야, 네가 살던 곳은 유령 도시가 되어버렸단다.





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현관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았어. 마치 엑스레이 투시를 할 수 있는 수퍼히어로처럼 말이지. 재미없고 오래된 질문이 떠올랐단다. “수퍼파워가 생긴다면 벽을 투시하는 능력과 날 수 있는 능력 중 어떤걸 고를래?” 압달말렉의 비둘기가 그리던 우아한 포물선과, 텅 빈 너희 집 거실의 암울한 풍경을 본 오늘 이후로는, 나는 앞으로도 늘 하늘을 나는 능력을 고를것 같구나.

집으로 들어가는 안쪽 문도, 파랑과 흰색 타일로 된 목욕탕의 문도 모두 사라졌더구나. 무너진 부엌 천장으로 2층의 침실이 보였단다. 아마도 네가 음악을 만들고 시를 쓰던 방이 아닐까. 나는 발 밑에 깨진 유리조각이 잔뜩 쌓인 네 거실 창문가에 서서 가만히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어.

ⓒ UNHCR/Christopher Reardon 폐허가 된 시리아 홈즈(Homs)의 주렛 알사야 구역(Juret al-Shayah )에서 자전거를 타는 남자 2019년 3월 촬영

이것이 바로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 전투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곳에는 거지들이 모여들어 남은 것들을 쓸어간단다. 전자기기와 가구, 냄비, 프라이팬뿐만 아니라 조명과 전기설비, 전선까지도 모두 벗겨가지. 문과 창문, 그리고 이들을 고정시켜주던 나무와 금속으로 된 문틀까지도.

나무는 아마도 난방과 요리를 위한 연료로 쓸테지. 나머지는 물물교환을 하거나 녹여서 다른 사람에게 파는 고물상에게 팔것이고. 누군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단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도 피난을 떠난 사람들만큼이나 절실한 나머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상황이지만, 하니야, 홈즈의 네 집은 다섯 해 겨울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살던 레바논의 임시거처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땔감으로 불을 피우는 화로 하나가 온 가족의 유일한 난방기구였던, 비닐 덮개로 둘둘 만 레바논의 옛 임시거처가 생각나니? 네 어머니는 우리에게 차를 따라주셨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가 시리아를 바라보았지. 그 눈덮힌 능선은 너무 가까워서 한두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

ⓒ UNHCR/Andrew McConnell 하니는 몇 분 만에 챙긴 피난짐 속에 제일 먼저 학업 증명서를 넣었습니다.

네가 남기고 간, 한때 소중히 여겼거나 매일 지니고 다니던 것을 찾아 추억거리로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안으로 들어가볼까 고민했단다. 하지만 이내 네가 피난을 떠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을 꼼꼼히 챙겨왔다는 사실을 떠올렸지. 피난 생활 중에도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해줄 학교 증명서 말이야.

결국 나는 집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단다. 이미 여러번의 안전교육을 통해 건물 안에 구조상의 손상이나, 몇시간전 나와 동료가 본 박격포 따위의 폭발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 아니면 녹슨 못을 밟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끔찍한 사건을 겪고 폐허가 된 곳을 괜히 들쑤시는 기분이랄까.

ⓒ UNHCR/Andrew McConnell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2011년 3월 15일에 태어난 하니의 막내 동생 아시라프. 레바논 난민촌에서 세 살이 된 아시라프의 모습. 2014년 3월 촬영

ⓒ UNHCR/Andrew McConnell 레바논 베카 벨리 임시 거처 밖에서 함께 웃는 하니와 막내동생 아시라프. 2014년 3월 촬영

언론이 2011년 3월 15일 시리아에서 분쟁이 시작됐다고 상기시켜주는 시기가 다시 찾아왔구나. 하지만 너와 나 모두 전쟁이 좀처럼 그런 정확성을 갖고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그리고 2011년 3월 15일이 네 가족에게 또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도 말이야. 이 날은 네 막내 동생 아시라프의 생일이기도 하지. 지난 8년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느리게 지나갔는지 놀라울 따름이구나. 그리고 그 세월이 네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그리고 약간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는지도.

하니야, 막내 동생 아시라프에게 여덟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해주렴. 그리고 촛불을 불기 전에 소원을 빌라는 얘기 해주는 것도 잊지 말고. 그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소원을 빌라고 해주거라. 그리고 너도 너를 위한 소원 하나를 함께 빌어 보려무나.

시리아 난민 하니의 이야기, 그 후

ⓒ UNHCR/Michelle Siu 지난 2017년 11월, 하니는 레바논 난민촌에서 처음 만났던 유엔난민기구 대변인 멜리사 플래밍과 캐나다 시민이자, 캐나다 총리의 청소년 자문 위원이자, 사진작가가 되어 다시 재회했습니다.

ⓒ UNHCR/Jean-Marc Ferre 하니는 2017년 캐나나 총리 청소년 자문 위원회 워원으로 위촉됐습니다.

ⓒ UNHCR (영상캡쳐) 하니의 가족은 현재 캐나다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하니 가족의 이야기는 방송과 강연을 통해 캐나다를 비롯한 전 세계에 여러번 소개되었습니다. 밝은 웃음을 되찾은 아시라프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니와 아시라프 형제, 그리고 그 가족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현재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Saskatchewan)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하니는 캐나다에서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학업을 이어가는 한편, 개인 사진전을 연 어엿한 사진 작가가 됐습니다. 또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과, 캐나다에 정착하고자 하는 난민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난민의 사회 통합과 고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강연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감동을 준 하니는 지난 2017년, 캐나다 총리의 청소년 자문 위원회(Canadian Prime Minister's Youth Advisory Council) 위원으로도 위촉됐습니다.



하니와 그 가족의 레바논에서의 피난 생활과 재정착한 캐나다에서의 연대기는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으로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여러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고, 다수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수 많은 ‘하니’의 미래를 응원해 주세요

2011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도움이 필요한 시리아인은 1천3백만명이 넘고, 560만 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난민촌에 머무는 인구는 단 8%. 나머지는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주변 국가에서 도시 난민으로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엔 본부로부터 전 세계 난민을 보호하고 난민 문제를 위한 국제적 행동을 이끌고 조정할 의무를 부여받은 유엔난민기구는 여러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시리아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의 시리아 난민 421,133명에게 현금지원과 함께 임시거처와 방한물품 등 혹한기 지원을 제공했고, 시리아 북서부 지방에서만 2018년 한 해 272,880명에게 쉘터와 긴급구호 물품을, 144,680만 명에게 유엔난민기구의 난민 보호 활동의 도움을 제공?습니다. (2018년 11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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