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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세계 난민의 날] 유엔난민기구 서포터 미카와 함께 난민을 응원해주세요

등록일 2016-07-01  l  조회수 3982


유엔난민기구 서포터 미카와 함께
난민을 응원해주세요 #WithRefugees


유엔난민기구 가족 여러분, 지난번 소개해 드린 미카(MIKA)의 레바논 난민촌 방문기를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유엔난민기구의 서포터 미카와 함께 전 세계 난민들의 꿈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미카가 전하는 세계 난민의 날, 그리고 난민들의 꿈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세요.




유엔난민기구 서포터, 미카를 아시나요?


ⓒ UNHCR / J. Matas 레바논을 방문한 미카는 버려진 양계장에서 사는 아베드(Abed, 40세)와 아마르(Amar, 40세)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는 분쟁 지역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전쟁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미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유엔난민기구의 서포터인 미카는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약 11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레바논 난민촌을 방문했습니다. 본인 역시 레바논의 혈통을 지니고 있는 미카는 그곳에서 전쟁의 공포로부터 피난한 수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과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 그리고 유엔난민기구를 마주했습니다.




2016 세계 난민의 날, 난민을 응원해주세요


미카가 2016년 세계 난민의 날을 위해 나섰습니다.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로, 난민 협약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고, 난민 보호라는 국제 사회의 책임을 전 세계에 공유하기 위한 날입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에 오른 수천 명의 난민들을 언급하며, 난민들 역시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고 전합니다. 미카의 영상과 함께, 난민들의 꿈을 살펴볼까요?


ⓒ UNHCR




22살 아프간 소년, 모츠타바의 꿈


22살 모츠타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입니다. 그는 하자라(Hazara)족에 속하며 탈레반(Taliban)의 공격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2007년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도착한 오스트리아에서 비호를 신청한 지 6개월 뒤, 소년은 학업과 꿈을 지원해주는 따뜻한 오스트리안 가족을 만났습니다.


ⓒ UNHCR/G. Welters 모츠타바는 13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며 암을 치료하는 연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피난길은 험난했어요. 당시 13살이었던 저는 피난길에서 제 형을 잃었어요. 형은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 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제 꿈은 훗날 암을 치료하는 것이에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 모츠타바



37세 수단 난민 엄마, 아토마의 꿈


수단에서 온 37세 아토마는 마을에 폭격이 떨어진 이후, 그녀의 고향인 블루 나일(Blue Nile)을 떠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아토마는 꼬박 5일을 걸어, 현재 13만 명의 수단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남수단 젠드라사(Gendrassa) 난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 UNHCR/E.Byun 아토마(37세)가 남수단 젠드라사(Gendrassa)에 있는 자신의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한 모습.


“처음 난민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수단에서 저는 농부였죠. 오직 유엔난민기구에서 나오는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 제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마가 어릴 적 가르쳐 준 음식을 기억하며, 지금은 작은 수단 식당을 운영해요. 사람들이 제 음식을 좋아해 주는 걸 보면 행복해요.제 꿈은 나중에 더 큰 식당을 차리는 거예요.”

- 아토마



40세 코트디부아르 난민 엄마, 아이린의 꿈


코트디부아르에서 일상적인 아침을 맞이하던 아이린은 아버지의 집에서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울려 퍼진 전화 한 통, 아이린은 아버지가 반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부친을 잃은 아이린의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군은 아이린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아이린의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그녀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린은 그저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 UNHCR/D.Diaz 그녀의 직업훈련소에서 학생과 함께 상품화될 옷을 만들고 있는 아이린.


“눈을 떴을 때, 저는 리비아 사크리피(Saclepea) 난민촌에 있었어요. 의사들이 제 생명과 배 속에 있던 7달 된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술 중이었어요. 다행히도, 제 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지금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몬로비아(Monrovia)에서 직업훈련소를 운영해요. 리비아 사람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들에게 다시 베푸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이 직업훈련을 통해 난민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저처럼 고난을 겪은 여성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그들에게 말해요. 삶에 낙담하지 마세요. 저도 이렇게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잖아요. 자신감을 잃지 말고,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외치세요!

- 아이린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난민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혹시 어릴 적 가슴속에 품어둔 꿈, 혹은 미래를 키워줄 꿈을 향해 달려가고 계시나요? 만약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소중한 꿈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던 적이 있더라도, 소중한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분쟁과 박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 역시 미소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난민들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난민을 응원해주세요. #WithRefu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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