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29] 시리아 어머니, 익사한 줄 알았던 아이와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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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12-29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15961
시리아 어머니, 익사한 줄 알았던 아이와 재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날은 엄마라면 고민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아이를 남겨둔 채 덴마크로 안전을 위해 피신했다.
기차에 탄 마날과 여덟 살배기 아들 카람. ⓒ 유엔난민기구/ 요한 바브만
마날이 시리아 법무부에서 근무 하던 당시, 전쟁의 위협이 엄습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마날은 엄마라면 하지 않아야 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세 아이를 버려둔 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홀로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이 격해짐에 따라, 마날의 고향은 폭격과 총탄으로 폐허가 되었다. 반군 세력으로 부터 직접 협박을 당하고 한 판사가 살해당하는 일을 겪은 후 마날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네 명이 함께 떠나기엔 시간도 돈도 부족했고, 마날은 다른 가족들도 곧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 하에 홀로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재회하기 까지 일 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날은 2014년 12월 덴마크로 피신하여 안전을 찾았으나 근심거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족과 재결합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날은 또 다시 3년을 시리아에 있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과, 그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견뎌낼 수 있을 지에 대한 걱정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마날은 “내 소원은 단 한 가지였다”며, “아이들을 보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인생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자식이 없는 삶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소원은 단 한 가지, 아이들을 보는 것이었다.”
절박해진 마날은 가족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덴마크로 데려오기 위해 밀수업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2015년 10월, 유럽으로 향하는 피난길에 올랐고, 마날은 페이스북과 왓츠앱 (WhatsApp)을 통해 장녀인 18살 사라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 당시 유럽은 가을이었고 마날은 유럽으로의 여정이 춥고 험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라는 10월 30일, 자신들을 국경을 지나 터키로 데려다 줄 사람을 찾았고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배편도 구할 것이라고 마날에게 연락을 해왔다.대부분의 경우 터키에서 해로를 통해 그리스 레스보스 (Lesvos) 섬에 도착하기까지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사라로부터 해변에 도착했으며 다음 날 새벽이면 작은 배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날은 잠자리에 들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터키에서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으로 향하던 배 한척이 난파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배에 탑승했던 많은 사람이 바다로 빠졌다고 했다. 바로 마날의 아이들이 탄 배였다.
시간이 흐르며 마날은 휴대폰을 통해 난파 사고로 인한 익사자의 사진 중 혹시 자신의 아이들의 얼굴도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흘 째 되는 날, 마날은 자신의 여덟 살 난 아들 카람과 닮은 한 남자 아이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갈색 곱슬머리부터, 눈과 순진한 얼굴까지 모든 것이 판박이였다. 사진이 흐릿하긴 했지만 자신의 아들이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만약 자식이 죽는다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마날은 자책했다. “아이들이 원한 것은 안전이었는데 내가 덴마크가 안전한 곳이라고 말해주었기에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때 마날의 페이스북 메시지 보관함에 새 메시지 하나가 수신되었다. 아주 짧고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부터 수신된 메시지였지만 아이의 엄마에겐 더 없이 소중한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당신의 자녀들은 살아있으며 현재 터키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만약 자식이 죽는다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한 어부가 카람과 조우디 그리고 사라를 바다에서 구해 터키의 쿤다 (Cunda) 섬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아이들은 배가 난파된 후 옷을 갈아입지 못해 젖은 옷을 입은 채 한 감옥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함께 있으며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열흘 뒤 석방 되었다.
아이들과 그들의 아버지는 엄마와 재회하기 위한 여정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완전한 가족이 되기 위해, 터키에 머무르거나 시리아로 되돌아가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들이 엄마와 재회하고 싶은 바람은 익사의 두려움 보다 컸다. 마날의 걱정과 달리 세 아이들은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스에서 아이들은 기차로 발칸 반도를 통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거의 한 달의 여정 끝에 아이들은 2015년 11월, 마침내 덴마크에서 엄마와 재회하게 되었다. 마날의 가족이 재회한 것은 헤어진 지 일 년도 더 된 뒤였다.
마날과 그녀의 아이들이 덴마크에서 거주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가족 재결합이나 아이들의 난민신청은 아직 계류 중이다. 덴마크 정부당국은 아이들을 마날의 거처로부터 한 시간 이상 떨어진 다른 난민신청자 보호소로 이송했다.
아이들을 보러 가기 위해 타야하는 기차와 버스비, 이동 시간, 그리고 자원 통역 봉사 일을 조율해야 하는 등의 문제로 마날은 아이들을 매일 보러 가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일 년 전 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과 더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것에 안도하며 마날은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구도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날이 말했다. “그 어떤 누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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