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난민, 숫자 이면의 개인을 만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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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2-10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2086
난민, 숫자 이면의 개인을 만나는 것
제임스 린치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
유엔난민기구에서 30년 넘게 일한 나는 숫자로 인해 놀라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를테면 나는 전 세계 7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늘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7천만 명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피난민의 일곱 배에 달한다는 사실, 혹은 11만 1000명의 아이들이 2018년 보호자나 가족 없이 홀로 피신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작년에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 명의 난민 신청자가 한국인들 사이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비교적 놀라웠다. 오늘날 세계 난민 문제의 규모나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누리는 위상을 고려했을 때 500명은 결코 한국이 해결할 수 없는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1951년 유엔 난민협약의 가입국이며 독자적인 난민법과 체계를 가지고 있고, 1994년부터 이미 난민 신청자를 수용하여 심사를 진행하여 왔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 7월 한국에 도착하여 알게 된 것은 이러한 공포심과 우려가 상당 부분 분쟁 지역과 한국 사이의 지리적인 거리와 그로 인해 발생한 난민이나 난민 신청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부족에 기인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공공과 민간 부문, 종교단체, 시민사회와 학계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며 나는 난민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난민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현재 한국인들에게는 난민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오는 사람들인지, 어째서 한국과 같은 먼 국가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전반적인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굉장히 긍정적인 경향이다. 한국에 오기 전 나는 이라크, 요르단, 태국, 라이베리아와 같이 대규모의 난민을 매일 조력하는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살면서 단 한명의 난민도 만난 적이 없거나 평생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유엔난민기구가 어떻게 열 수 있는지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다만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유엔난민기구 일원들 중 그 누구도 난민을 생각할 때 피난 중인 대규모 인구집단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난민을 생각하며 우리가 만났던 가족, 함께 축구를 했던 소년, 자녀들을 익사 직전 구한 용감한 어머니, 그리고 자신들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기꺼이 들려준 무수한 개인들을 떠올린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들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던 평범한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과 딸들 말이다. 당신과 나 역시 언제든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상황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난 2017년 8월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인해 수십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70만 명 가까운 난민은 전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쿠투팔롱에 발이 묶여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나는 자신들의 어려움을 뒤로한 채 더욱 긴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놀라운 난민들을 만났다. 장기화되는 역경 속에서도 의사, 교사 그리고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 난민들은 스스로 배우고 훈련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나는 예멘 주방장이 만든 음식을 통해 난민과 도민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제주도의 첫 예멘 식당인 와르다 레스토랑에 대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또한 자신들의 이란 난민 친구의 송환을 막기 위해 용감히 투쟁한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보호와 지원이 제공되는 국가에서 난민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이들에게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 번영을 이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당 사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난민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때로는 멀고 먼 낯선 나라까지 와서 보호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난민은 한국과 같은 안전한 국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러 번에 걸쳐 피신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회복 의지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난민은 자선에 의지하기보다는 독립하여 자활하기를 희망하며, 안전해진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신을 보호해주는 국가에 기여를 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난민에 대한 국민 정서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예멘 난민 신청자 대부분에게 인도적 체류 자격을 부여함으로서 이들에게 필수적인 보호를 제공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 결정을 감사히 여긴다. 또한, 한국이 국제난민 보호에 있어 그 책무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난민과 인도적 체류 허가자 사이에 존재하는 법적 지위와 권리 사이의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인 발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가 한국에서 기본적인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한시적인 법적 지위는 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 자격은 주로 분쟁과 내전으로부터 피신한 이들에게 부여되고 있는데, 이러한 불안 상황이 조기에 종식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한국이 인도적 체류 허가자의 체류 자격, 취업과 의료 보험 등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들에게 가족 재결합 및 귀화를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작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거대한 숫자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을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귀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난민은 누구일까? 여러분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을 때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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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