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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내 고향은 부룬디, 내 이름은 김창원 ... 애국가 2절도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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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8-07-23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2664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2405698 


내 고향은 부룬디, 내 이름은 김창원 … 애국가 2절도 불러요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원씨는 ’한국인으로 살며 일과 가정 모두를 꾸릴 수 있어 행운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최승식 기자]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원씨는 ’한국인으로 살며 일과 가정 모두를 꾸릴 수 있어 행운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최승식 기자]


“‘김창원’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았을 때 가장 감격스러웠죠.”
 

- 2010년 한국 귀화한 김창원씨
- 유엔난민기구 도움으로 정착 성공
- “석사도 따고 대기업 취직도 했어요”


경남 창원에 살고 있는 김창원(40)씨의 고향은 아프리카 부룬디, 예전 이름은 도나티엔이다. 1993년 열다섯에 종족 간 내전으로 부모님을 잃은 그는 2003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부룬디국립대 재학 중 국제대학 학생대표 자격으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육상 10,000m와 하프 마라톤 종목에 참가한 게 계기였다. “2002 한·일 월드컵으로 한국을 처음 알게 됐어요. 매일 불안에 떨어야 하는 부룬디와 달리 한국은 안전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만났던 한국인 모두 친절했고요.” 위험한 고국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그는 한국에 머물다 2005년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서울에 머물며 인쇄소 회사를 다니다 창원에 갔고, 2010년 귀화했다. 대체로 난민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에 정착한다.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 제3국을 찾는다. 김씨는 첫 번째로 이주한 국가에 성공적으로 귀화한 케이스다.
 
창원에 가게된 건 마라톤 덕분이었다. 현대 위아에서 일하던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창원 지사에 일자리가 있다며 소개시켜줬다. 김씨는 2005년 입사 후 현재까지 차량부품생산관리팀에서 수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중국·인도·멕시코 등 해외로 공급하는 업무를 처리한다.
 
그는 이 회사에서 13년간 일하며 경남대에 편입해 졸업했고 경영학 석사학위까지 땄다. 부룬디국립대 경제학과를 3학년까지 마친 그는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평일엔 회사, 주말엔 대학원에 다녔죠. 밤에 공부하느라 하루 4시간씩 잤어요(웃음). 그래도 회사 동료들이 5시에 일을 마치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배려해줘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씨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국에 온지 3~4개월 후부터 동대문과 창원의 이주민센터 등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일보다 중요한 게 소통이더라고요.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말을 해야 물건 값도 깎을 수 있고요(웃음). 창원에 간 후엔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어 말이 빨리 늘었습니다.” 그렇게 배운 한국어로 그는 귀화 시험도 한 번에 통과했다. 시험엔 삼국시대부터 한국 근·현대사까지 국사 문제와 촌수 세는 법 등 문화 문제 등이 출제된다. “면접시험 땐 애국가 2절 가사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공부할 내용은 많은데 일정이 촉박해 겁이 났었죠.”
 
김씨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곳은 유엔난민기구였다. 법무부와 출입국사무소 등과 협의해 행정적 지원을 해줬고 난민 신청자에게 임시 거처를 내주는 이도 소개시켜줬다. 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알 수 없어 무척 불안했다”며 “당시 난민기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5년 전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김씨는 부룬디에 남아 있는 가족이 소개해준 여성과 결혼했다. “결혼을 위해 한국까지 와준 고마운 아내죠. 힘든 점도 많겠지만 굳게 결심을 하고 왔으니 잘 견뎌줄 거라 믿어요.” 어느덧 김씨는 4살, 2살 두 아들을 둔 가장이 됐다. 지난 2월엔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는 영광도 누렸다. 이제 한국은 어엿한 모국이 됐다. “한국에서 차별 받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창원 이웃들이 정이 많아 부탁하지 않아도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셨거든요. 창원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름을 ‘김창원’이라 지었겠어요(웃음).”  
  
지금 이 순간에도 미얀마, 태국 등엔 내전으로 많은 이가 고국을 떠나 난민 지위를 신청하고 있다. 그는 “나 역시 난민 생활을 겪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마라톤에선 생각을 비우고 목표 지점까지의 기록에만 집중해야 완주할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현실이 아무리 험난해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좋겠어요. ‘내가 달릴 트랙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요. 현실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난민의 삶’에 관해 묻자 김씨는 “정말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난민은 한국에 폐를 끼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쩔수 없이 고통을 받은,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죠. 안정을 찾고 더 나은 삶을 꾸려 가게 도와주시면 스스로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김나현 기자 respri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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