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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호롱불 의지하던 부탄 난민들 “미국서 살 생각 하니 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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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03-21 작성자 : UNHCR 조회 : 8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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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의지하던 부탄 난민들 “미국서 살 생각 하니 설레

5일 오후 티마이 난민촌 내 학교의 초등반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덧셈을 배우고 있다. 10학년까지 교과과정이 개설돼 있으며 영어병행 교육도 실시된다.

 

네팔 ‘다막’ 난민촌 르포

 

전쟁과 폭정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 타국을 전전하는 난민의 인생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이 난민촌을 전전하는 이들에게 제3국 정착이란 대안이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유엔난민기구 (UNHCR) 한국대표부 와 함께 3~11일 7개 부탄 난민촌이 설치된 네팔 동부 다막 지역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난민촌 인생’을 취재했다.

10여 개국 배급품으로 기본 의식주 겨우 해결


7개 난민촌 11만 명 중 최대 8만 명 미국 등으로

5일 네팔 ‘티마이 난민촌’ 내 세계식량계획(WFP) 막사에선 쌀·식용유·소금 등 7가지 생필품이 배급되고 있었다. 배급카드에는 가족 숫자와 항목별 배급량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난민촌에 살고 있는 1만여 명의 주민 대부분은 일거리가 없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난민촌 첫 정착세대인 아추트 카플리(45)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배급품에 의존해 살다 보니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난민촌 밖의 건설 공사장 등을 찾아가 막일을 하기도 하지만, 네팔인들보다 턱없이 대우가 낮아 불만이 많다. 아칼싱 다망(21)은 “같은 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네팔인의 60%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털어놨다. UNHCR이 운영하는 다막 지역의 다른 6개 난민촌 사람들의 여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난민들은 UNHCR과 10여 개국에서 보내 온 지원품으로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난민촌은 네팔인 마을 속에 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 정도가 난민촌과 현지인 부락을 구분해 주는 경계일 뿐이다. 여건만 보면 난민촌의 오두막보다 못한 주민들의 집도 숱하다. 하지만 난민촌 생활은 그 땅의 주인인 네팔인들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난민촌 내 학교의 교사인 수브라트 시레스타(27)는 “나라 없는 설움이 난민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제3국 재정착’방안=이 지역 7개 난민촌에는 1990년 이래 부탄에서 절대 왕정에 반대하다가 쫓겨난 네팔계 부탄인 10만8000명이 살고 있다. 부탄 정부의 거부로 귀향하지 못한 채 18년째 난민촌 생활을 하고 있다.


UNHCR이 2006년 이들 문제를 풀기 위해 ‘제3국 재정착’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에 호응한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노르웨이·덴마크·네덜란드 등 7개국이 모두 8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난민들의 첫 반응은 차가웠다. 미켈레 만카디니사 네팔 UNHCR 부대표는 “재정착 방안은 이미 소말리아·이라크 난민들에게 적용해 성공한 모델이어서 기대가 컸는데 난민들이 처음에는 격렬하게 저항해 당황했다”고 밝혔다. 난민들이 “제3국에 가면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면서 올 5월에는 네팔 UNHCR 옆 건물이 폭탄 공격을 당했고, 폭동 수준에 가까운 혼란도 발생했다.


그러자 UNHCR 측은 이들의 불안을 덜기 위해 적극 홍보에 나섰다. 5일 오전 사니샤레 난민촌 정보센터. UNHCR 측이 준비한 재정착 안내 프로그램이 TV 화면에 방영되자 남녀노소 50여 명의 시선이 집중됐다. 프로그램엔 미국으로 건너간 콜롬비아 난민들의 생활상과 현지에서 도움을 받아 정착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20여 분의 방송이 끝난 후 질문이 쏟아졌다. 대부분 신분 보장에 관한 것이었다. 유년 시절 난민촌에 들어왔다는 인드라 프라사드 아드히카리(21)는 “도착하고 1년 후면 시민권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거부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UNHCR 관계자는 “신청 후 시민권 취득은 거주 5년 후부터 가능하고, 재정착이 수용된 이상 거부될 가능성은 작다”고 안심시켰다. 올해 초 재정착국으로 떠났던 친척들의 설득 효과도 컸다고 한다. 리아나와티 UNHCR 다막사무소 소장은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자녀가 어린 부모들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신청이 쏟아져 지난해 2명에 불과했던 재정착민 수가 올해는 6500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은 다막 지역 내 총 7개 난민촌에선 매 주 400~500여 명이 7개 국가로 떠나고 있다. 리처드 그린델 UNHCR 재정착 담당관은 “난민은 임시 상황일 뿐 고착돼선 안 된다. 난민 지원은 국제사회가 짐을 나누는 숭고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별과 희망 = 7일 오전 6시(현지시간) 네팔 동부 다막 인근에 자리한 벨당기 난민촌. 새벽의 정적을 깨는 흐느낌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벨당기난민 30명은 이날 미국으로 떠난다. 이들은 부탄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에서 새 삶을 찾기로 한 사람들이다.


7개 난민촌에서는 매주 목~일요일 낯선 땅으로 떠나는 발길이 이어진다. 평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난민촌에선 매우 큰 사건이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이웃들은 떠나는 가족의 오두막 주변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대나무를 엮어 세운 허름한 오두막 곳곳에선 이별의 순간을 맞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시톰 모굴(18) 가족도 이날 미국 시카고로 떠났다. 모굴은 “부모가 91년 네팔에서 왔다”며 “할머니·부모와 다섯 남매 등 가족 8명 가운데 나와 부모, 두 누나가 먼저 출발해 미국에 정착하면 할머니와 두 형은 내년 말 미국으로 건너가 합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에 의지하는 오두막 실내는 토굴처럼 어둑했지만 해진 옷가지와 식기를 챙기는 손길은 분주했다. 짐을 꾸리는 손자 옆에서 호롱불을 비춰주던 할머니의 눈가는 눈물로 범벅이 됐다. 할머니는 미국으로 가는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의 미간에 티카(붉은 염료)를 찍어주며 연신 복을 빌었다. 시톰은 “난민촌에서 태어나 처음 바깥 세상에 가게 됐다. 겁나기도 하지만 흥분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난민촌 내 학교에선 앞으로 미국 등 7개 선진국에 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난민촌에서 태어난 바카람 퓨옐(15)은 “미국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어 병행 교육을 받고 있지만, 문제는 교육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이다. UNHCR 한국 대외협력팀 유혜정 팀장은 “10학년까지 교과과정이 있지만 교재와 수업 여건이 매우 나쁘다”며 “순조로운 재정착을 위해선 교육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다막(네팔)=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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