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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9] 고향을 떠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콜롬비아 아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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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8-01-19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2279

고향을 떠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콜롬비아 아와족

폭력사태로 고향을 떠난 원주민들은 불안한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


아와 마야스케르족 쿠아살루산 나스타쿠아스는 콜롬비아 열대 우림 속 본토에서 사냥하고, 가축을 키우며 작물을 경작하며 살았다.

 

하지만 잔인한 폭력사태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는 이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버스로 삼십분 거리에 있는 지방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밀림에 살았을 때에는 농지를 갈고, 유카를 심고, 돼지를 키웠습니다. 쫓겨나기 전까지 도시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죠"라고 그의 아들 아르만도 쿠아살루산 파이가 설명한다.

아와 마야스케르족과 같은 원주민들은 50년 넘게 지속된 콜롬비아 폭력사태로부터 제일 크게 타격을 받은 사람들에 속한다. 폭력사태는 국경 안팎으로 76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콜롬비아 남서부 나리뇨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아와족은 정부군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간의 십자 포화 속에서 공격을 당했다.

2016년에 평화협정이 채택되었지만 최소 11명의 사망자를 낸 2009년 반란의 대학살과 지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와족은 다시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어른들은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고려조차 안합니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것이 강제로 그곳에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고 안전을 위해 재정착을 신청했습니다"라고 지도자 아르만도는 말한다.


38세 아르만도 쿠아살루산 파이는 바나나를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비야가르손 아와족 임시 거주지에서 사는 17개의 가정은 각 4헥타르의 농경지를 받았다. 
ⓒ UNHCR/Ruben Salgado Escudero

콜롬비아는 가장 다양한 부족이 사는 나라 중 하나로 102개의 원주민 집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콜롬비아 헌법 재판소에 따르면 그 중 아와족을 포함한 삼 분의 일의 인구가 폭력사태와 그와 연관된 실향에 의해 멸족 위기에 처해있다.

"그들의 삶은 집단을 토대로 세워져 있죠"라고 유엔난민기구 직원 해럴드 주아지비오이는 말한다. "폭력사태가 일어날 때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그들의 일체감입니다. 한 개인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가 다칩니다."

헌법 재판소는 2011년에 아와족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책을 세우려 나섰다. 그리고 6년동안 국내실향이 일어난 뒤인 작년 4월, 정부는 열일곱 아와족 가정에게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게끔 콜롬비아 남부 푸투마요 비야가르손에 239 헥타르의 땅을 주었다.

정부에 의해 자리를 옮기게 된 사람들 중 먼저 재정착한 가족들은 목재 판자를 올려가며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새 보금자리에는 수돗물도 변소도 전기도 없으며 지붕 대부분은 장마철을 대비해 검은 플라스틱 봉지가 감싸고 있다.

"우리 원주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십니까? 영토 뿐만이 아니라, 거처, 에너지, 물, 흐르는 물과 식량 확보를 위한 생계 사업 계획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저희를 완전히 방치해버렸습니다"라고 아르만도는 주장한다.

"거처, 에너지, 물, 흐르는 물과 식량 확보를 위한 생계 사업 계획이 필요합니다."

아와족이 다시 자립하기 위해서는 경작과 가축 구입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아르만도는 설명한다. "이것이 저희가 이 곳에서 지내기 힘든 이유입니다. 어떤 날들은 먹을 것이 있지만 다른 날들은 커피 몇 모금으로 보내야 하죠.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상황이 이러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을 때 원주민들의 실향은 그저 영토 상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희는 두려움 때문에, 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영토 밖에서 토착어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주아지비오이는 말한다. "도심에서의 차별 때문에 전통, 관습과 의식 절차가 점점 사라지거나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라고 덧붙인다.

비야가르손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미완성 상태이지만 그 중 잘 지어진 한 목제 집은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원주민 보호 구역 상징이 칠해진 이 집은 유엔난민기구가 지은 그들의 문화센터이다.

이 공간 안에서는 누구나 칠 수 있게끔 대나무로 만들어진 타악기 마림바가 놓아져 있다. "마림바는 나리뇨에서 갖고 왔습니다"라고 아르만도는 말한다. "어른들이 어떻게 치는지 가르쳐 주었죠. 지금은 문화가 지속되도록 제 아들에게도 가르쳐 줍니다."

해는 저물어 가고있고 이그나시오 쿠아살루산은 18킬로미터 떨어진 모토아로부터 돌아왔다. 긴 하루 끝에 8달러에 상당하는 25,000 페소를 벌었다. 가족에게 먹일 12킬로의 쌀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르만도가 마림바를 칠 동안 그는 아이들과 합류한다.

"저희는 자연과 교감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아쉬워하며 말한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음악에 맞춰가며 마림바를 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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