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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아르메니아에서 안전을 찾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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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3-11-08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866

아르메니아에서 안전을 찾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 난민들


아르메니아로 떠난 10 명의 다른 난민들처럼, 카린(Karine) 그녀의 친척들은 현재 심리적 충격과 어떻게 삶을 재건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에 있는 시어머니 댁에서 가족들 사이에있는 마리암(Mariam) 카린(Karine) (중앙) ⓒ UNHCR/Melik Benkritly


얼마 둘째 마네(Mane) 출산한 24세의 카린은 카라바흐(Karabakh) 마을 마르타케르트(Martakert) 위치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도착할 가족들을 기다리며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 카린의 집에서는,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친척인 마리암(Mariam)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는 축하 파티를 위해 집을 꾸미고 테이블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리암의 남편 헤라흐(Hrach) 명의 자녀들, 그리고 카린의 남편인 아르툠(Artyom) 함께했다.


그러나 즐거운 모임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대피하라는 문자가 퍼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은 카린을 포함해 병동에 있던 다른 산모들에게 아이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 가라고 했다.


순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들이 유치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카린은 말한다.


ⓒ UNHCR


아르툠이 급히 유치원에서 병원으로 어린 아들을 데려오는 동안, 미리암과 가족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지하실로 대피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놔둔 도망쳤다. 방을 꾸미지도 못했다. 집에 있던 서류만 겨우 챙겨 지하실로 내려갔다.” 라고 마리암은 말한다.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가족은 병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불안한 이틀 밤을 지하실에서 보냈다. 결국 신변의 위협을 느낀 가족은 고향을 떠나 아르메니아 국경으로 향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도로는 탈출을 시도하는 가족들로 막혀 평소에는3시간이면 있는 길이 40시간이 넘게 걸렸다.


9 25 이른 아침, 지치고 배고픈 상태로 마침내 아르메니아의 코르니조르(Kornidzor) 마을에 도착했을 비로소 카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코르니조르에 도착한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구호 요원, 자동차, 구조대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영화에서나 항상 보았다. 나에게도 구호 요원들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며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카린과 그녀의 가족은 9 마지막 동안 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온 10 이상의 난민들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안고, 지치고 굶주린 채로, 심리?사회적인 지원과 긴급 지원이 절실한 상태로 도착했다. 난민들의 30% 아동과 여성, 노인들이었다.



미리암 옆에서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카린. ⓒ UNHCR/Melik Benkritly


유엔난민기구에서 파견된 팀은 첫날부터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정부 주도의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어 지원을 제공했다. 유엔난민기구는 당국이 새롭게 도착한 사람들을 등록하고 난민 가족의 필요를 평가하는 도움을 주는 기술 장비를 제공했다.


유엔난민기구는 밤낮없이 일하며 협력 기관인 비영리단체 미션 아르메니아(Mission Armenia) 함께 접이식 침대와 매트리스, 이불과 베개, , 위생 용품, 주방 도구 난민 가족들이 필요한 기타 필수품들을 배분하고 있다. 새로 도착하는 많은 사람들은 외진 국경 지역에 머무르며 혹독한 초겨울 날씨에 대비해야 하는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와 유엔, 그리고 다른 비영리 협력 기관은 아르메니아에 있는 난민들에 대응하기 위해 9 7백만 달러의 긴급 모금을 호소했다.  


일부 난민들은 호텔, 호스텔, 학교와 다른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는 반면, 카린과 그녀의 친척들은 현재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친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15명으로 늘어난 대가족은 아르메니아 게가르쿠니크(Gegharkunik) 주의 바르데니스(Vardenis) - 북쪽과 동쪽은 산으로, 서쪽은 세반(Sevan) 호수로 둘러싸인 평원의 시골 마을 - 있는 침실 2개짜리의 헤라흐 형제의 부모님 댁으로 모여들었다.


형제들의 어머니 로멜라(Romella) 며칠 자녀들 그리고 가족들 간의 연락이 끊겼을 때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정말 끔찍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으며 소식이 닿기를 기도했다. 자녀들이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안도감은 말로 설명할 없다.”


안도감은 지붕 아래 많은 친척이 모여 사는 것에 대한 잠재적인 걱정보다 크다.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 자녀들과 떨어져 있었을 때에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집이 같았다. 이제는 모두가 여기에 함께 있으니 집이 찬다. 나는 너무 행복하고 만족하고 있다. 지금은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렇게는 여기서 오랫동안 없다.”

헤라흐,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는 난민


그러나 카린과 그녀의 어린 가족은 집을 떠나온 아르메니아의 많은 난민들처럼 여전히 자신들의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아들이 새벽 5시마다 잠에서 깨며 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을거죠?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모든 일이 일어났을 혼자였기 때문에 여전히 무서워하며 유치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헤라흐에게 현재의 이런 상황은 일시적인 임시방편일 ,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다. 헤라흐 부부는 수도 예레반(Yerevan) 근처에 작은 집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반만 지어진 상태이기에 대출금에 더해 보수 공사를 마무리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는 여기서 오랫동안 없다.” 그는 말한다. “지금은 이게 나의 우선순위이다. 지금 단계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곳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직장을 구하고,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집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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