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7]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저에게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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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1-01-27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9589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저에게
열렸어요
킥복싱
챔피언이었던 무카마존은 현재 태권도 제자들이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 UNHCR/Elyor Nematov
승리 후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를 듣는 것은 언제나
무카마존 투르구노브(Mukhamadjon
Turgunov)의 가장 큰 꿈이었다. 그러나 이 킥복싱 전 챔피언은 국제 대회에서
조국을 대표할 기회가 없었다. 그와 같은 무국적자들에게 해외여행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무카마존은 “저는 가족의 구성원인 동시에, 고아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 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입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자랐고, 이 곳에서 공부했고,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이제 그는 태권도 코치로서, 조만간 본인이
가르친 태권도 선수들이 해외에서 경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20년 4월, 29년 인생 중
28년간의 무국적자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우즈베키스탄 시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고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최근까지도 우즈베키스탄은 97,346명의 무국적자
숫자를 기록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무국적자 비율을 갖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20년 4월에 발효된 새로운 법 덕분에,
이제는 거의 5만 명의 무국적자들에게 시민이 될 자격이 생겼다. 이 법은 1995년 이전에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출생 등록을 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포함해 모든 자녀가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해당 절차를 개정했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대통령은 12월 29일 우즈베키스탄 의회에서의 연례 연설에서
2021년 정부는 국가의 무국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연설에서 공개된 새로운 계획에 따라 2005년 이전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민이 될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무국적 상태를 해결하고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무국적자들이 평생
동안 배척과 차별에 직면한다.
그들은 투표를 할 수 없고, 교육을 받거나, 의료 지원을 받거나, 해외 여행을 하거나, 일자리를 찾거나,
심지어 휴대 전화의 심카드(SIM card)도 살 수 없다. 세계적으로 420만 명이 무국적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체 국가들 중 절반 미만이 무국적자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에, 실제 무국적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공화국,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 주 중 하나로 2014년에 시작된 유엔난민기구의 #IBelong 캠페인의 지원을 받아 최근 몇 년간 무국적 상태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6년 동안 이 지역의 83,000여 명의 무국적자가 국적을 취득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을 바탕으로 최근 몇
년 동안 무국적 사태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해 중요한 조치들을 취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즈 공화국,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5개 국가들 중 하나이다. 이 국가들은 또한 2024년까지
무국적사태의 종식을 목표로 하는 유엔난민기구의 #IBelong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6년 동안 이 지역의 83,000여 명의 무국적자가 국적을 취득했다.
대부분의 중앙 아시아의 무국적 사태는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해 발생했다. 과거에는 국경들이 개방되어 있었고, 소련 여권을 통해 국가들을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국경지대는 더더욱 국가 정체성이 약했고 여행 제약이 거의 없었다.
무카마존은 소련이 붕괴되기 불과 4개월 전인
1991년 8월 키르기즈 공화국에서 우즈베키스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키르기즈 공화국 국경과 가까운 우즈베키스탄 도시 나망간에서 왔고, 아버지는 키르기즈 공화국 태생의 우즈베키스탄인이었다. 두 도시들 사이의 거리는 겨우
60 킬로미터였고, 1991년 전까지 이 둘은 두 소련 공화국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자주 가로질러 여행했다. 1992년 말, 무카마존의 가족들은
나망간으로 이사를 갔지만, 시민권을 주장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새로운 법은 그해 5 월 1 일 이전에 우즈베키스탄에
영주권을 가진 사람만이 우즈베키스탄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카마존은 무국적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무국적자로서의 지위가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의
무국적자들은 투표권과 출마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권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으려고
할 때 그들은 벽에 부딪혔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무국적자들에게 발급한 여행 문서인 ‘회색 여권 (grey passports)’을 모든 나라가 인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이 외국 비자를 신청하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 되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300km 가까이 떨어진 도시에 살았던 무카마존에게는 더더욱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무카마존은 "저는
우즈베키스탄의 킥복싱 챔피언이었기에 코치님이 해외 선수권 대회에 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비자 관련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이는 스포츠
경력에 있어 큰 장애물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선수로서의 무카마존의 경력은 끝났지만, 언젠가는 제자들
중 한 명에게 우즈베키스탄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기를 희망한다. 제자 두 명은 이미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제자들의 경기가 열리는 우즈벡 태권도 연맹
건물의 복도에 앉아 무카마존은 "운동선수들은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애국심이 강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로 다닐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이 좋은 결정이었음을 보여주겠습니다"고 희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