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HOME 뉴스와 자료

[21.02.04]교육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첨부파일 : 학교.jpg

등록일 : 2021-02-04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2405

교육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마흐부바가 파키스탄 퀘타에 있는 그녀의 집에 설립한 비공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UNHCR/Humera Karim


파키스탄에 사는 22살 아프가니스탄 난민 마흐부바는 때때로 그녀의 가족을 부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녀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본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미래에 어떤 희망을 꿈꾸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4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분쟁과 불안정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집을 떠나야만 했다. 현재, 등록된 270만 명의 난민을 포함한 약 46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아직도 아프가니스탄 밖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이란에 살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140만 명이 넘는 아프간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에는 발루치스탄 주의 수도 퀘타에 사는 마흐부바와 그녀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아프가니스탄 난민들도 파키스탄에서 교육을 받을 수는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과 팽배한 문화적 규범들로 인해 난민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가 힘든 실정이다.

30년이 지났지만,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의 삶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여정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끊임 없는 무력 충돌과 폭격으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바글란에 있는 집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엄청난 공포 속에서 며칠을 걸은 끝에,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쉼터를 찾으셨습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따뜻하게 입을 옷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굶주린 상태였지만,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에 모스크에서 받았던 남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기 파키스탄에 정착을 하게 되었지만, 수많은 역경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12, 4학년일 때 아버지는 사고로 인해 마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가장이었습니다. 그 후, 저와 어머니, 형제 자매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무엇이든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계속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저와 부모님 모두에게 중요했습니다. ‘교육이라는 아이디어는 매우 아름답고 감미롭게 들립니다. 하지만 실상으로, 교육을 받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7학년이었을 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오까지 과외를 시키고 나서,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대부분 세수할 틈조차 없었습니다. 또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식사를 걸렀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각한 것에 대해 벌과 질책을 받는 것은 언제나 낙담스러웠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밤에는 어머니를 도와 재단을 하고 자수를 놓는 일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가치 있었습니다. 교육은 삶의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교육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이는 깨달음과 자기 계발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제가 설립한 저희 집의 비공식 학교가 5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장소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현재 우리 학교에는 32명의 여학생과 12명의 남학생들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프간 영사관의 인가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는데, 이는 제 학생들의 학력증명서가 인정 될 뿐만 아니라, 아프간 정부에 의해 직접 발급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듯이, 교육은 보물이고, 모든 사람은 보물을 찾을 책임이 습니다. 교육 덕분에 저는 가족과 지역사회를 도울 있었습니다. 교육 없이는 우리는 개인의 번영도, 공동체의 번영도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발루치스탄 대학에 입학하여 행정학 학사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2월부터 수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더 많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이 학업을 계속할   있기를 랍니.

사는 곳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어린 소년들이 매일 잡일을 해서 벌어오는 약간의 돈 때문에 이 아이들이 제 학교에 다니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가정을 직접 본 경험도 있습니다.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전통적인 역할로 인해, 딸을 학교에 등록시키도록 일부 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점점 더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변화의 과정은 항상 딥니.

하지만 좋은 교육을 받았더라도, 난민들의 삶은 매우 고달픕니. 우리의 학위가 반드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지도 못합니다. 때때로 조롱과 각종 차별 행위들로 인해 우리가 살고 태어난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뉴스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카불'이라는 이름말 달콤하게 들립니다. 저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그렇듯, 고국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그곳의 법과 질서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며, 이는 우리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전 세계의 젊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재능 있고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기 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돌아가 조국에 이바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과 저는 여기 파키스탄에 피난처를 찾을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민으로서, 우리는 기본적인 욕구 이상의 것들을 추구합니다. 우리에게도 다른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직업에 대한 기회, 음악, 예술 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공동생활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여행하기를 원합니다. 재능을 가지고 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우리가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난민을 존중하고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는 어쩔 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고, 우리가 안전과 존엄성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움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목록


QUICK MENU

  • 후원하기
  • 나의후원
  • 후원인증
  • 문의하기
  • 갤러리
  • 새소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