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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부자에겐 문지방 난민에겐 철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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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7-17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13058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5556.html

 

부자에겐 문지방 난민에겐 철옹성

 

 

국경을 넘어온 난민은 세 가지 갈림길에 선다.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거나, 또다시 정착할 곳을 고민하거나. 고향 귀환을 소망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더라도, 그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난민은, 한국에서 ‘장기 체류’가 예정된 사람들이다. ‘난민인정자는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 난민인정자 처우 안내문에 적힌 이 문구는 그저 글자일 뿐 아직 현실이 아니다. ‘국민과 난민 사이’ 기획 연재 세 번째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이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를 들여다보았다. 난민들의 선택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다. 한국 ‘국민’으로 살고 싶다는 난민이 있는 반면, 국적 취득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난민인정자에겐 거주(F-2)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 국적을 받으려면,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5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한 뒤 일반귀화 신청을 해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난한 난민이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_편집자

 

한국 생활은 어느덧 16년째.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다 5년 전 가정을 일궜다. 아내는 한국인이다. 고향이 그립지만 아직은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이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다.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삶의 행로다.

 

"국적 가지려면 3천만원 자산 필요"

 

버마(미얀마)에서 건너온 세닌(42·가명)의 이야기다. 소수민족 출신인데다 아버지가 민주화운동을 한 까닭에 고향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1997년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김포공항에 발을 디뎠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맞은 한국에선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도 김포·용인·광주를 거쳐 수원의 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불법체류자였다. 단속을 피하려고 공장 기숙사에서 숨죽여 지내기도 했다. 일하다 다쳐도 병원비조차 받지 못하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이었다. NLD 회원들은, 불법체류를 하던 한 회원이 단속에 걸려 본국에 송환되자 2000년 난민신청서를 낸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거주(F-2) 체류 자격이지만, 만약 돈이 많았다면 손쉽게 부여받을 수 있었다. 제주 부동산에 5억원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게도 F-2 비자가 주어진다. 부자들에게 한결 낮아진 국경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철옹성이다.

 

▲ 한국에서 16년 동안 살면서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세닌(가명)은 한국 국적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무렵, 그에게 큰 변화가 생긴다. 한국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국적 취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닌은 외아들이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뵙고 싶다. 대한민국 여권을 갖게 되면, 고향에 갈 수 있다.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게 됐지만 일상생활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생계나 주거 문제뿐만은 아니었다. 한국의 헌법을 비롯한 대부분의 법률과 정책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난민 등 외국인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거나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동사무소나 구청 직원들은 ‘난민’을 잘 모른다. 의사소통에도 불편함이 따르니,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공항에 갈 때면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부터 앞선다. 한국 정부가 발행해준 여행증명서가 매번 말썽이었다. 난민은 본국에서 발급한 여권 대신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에서 내준 여행증명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지난해 인천공항 출국심사대 기계가 여행증명서 바코드를 읽어내지 못해 곤란을 겪은 기억이 가슴에 박혔다. 항공사나 공항 직원,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조차 여행증명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세닌은 아내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국민이 될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F-2 체류 자격을 결혼이민(F-6) 체류 자격으로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갈 수 없는 버마에서 혼인신고를 해야 결혼이민 체류 자격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2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고 혼인 상태를 유지하면 귀화를 신청할 수 있다. 만 20살 이상 외국인은 합법적인 체류 자격으로 5년 이상 한국에 주소지를 둬야 귀화 신청이 가능하다. 국적을 가지려면 3천만원가량의 자산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마음에 걸린다. 한국 생활 17년째가 되는 2014년, 간절한 바람대로 한국 국민이 될 수 있을진 아직 알 수 없다.

 

<한겨레21> 설문에 답한 86명 가운데 세닌처럼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다’(37명)거나 ‘현재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7명)는 난민은 44명이었다. 반면 국적을 취득할 계획이 없다는 난민도 34명이다. 4명은 어느 나라 사람으로 살아갈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난민 중에는 국적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길이 없어 취득 여부를 아예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도 있었다. 2013년 7월 기준으로 전체 난민인정자 334명 가운데 한국 국적 취득자는 10명이다.

 

추방의 공포가 국적 취득 욕구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는 난민은 국적을 취득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를 둔 난민은 ‘한국 사회에서 내 아이가 사람 노릇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에서 외국인은 국민의 가족으로만 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엄마·아빠가 모두 외국인인 난민 자녀 등 이주아동을 위한 출생등록제도가 없다. 고등학교의 경우 외국인 학생의 입학 여부는 ‘학칙’에 따라 결정된다. 버마에서 온 벤자민(가명)이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미아(가명)는 자신이 한국 국적을 가지면 아이들도 자동적으로 한국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난민 부모 가운데 한 명이 국적을 취득한다고 해서 미성년 자녀가 곧바로 한국 국적을 갖는 건 아니다. 국적법에 따라 특별귀화 신청을 따로 해야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배우자에겐 국적 취득 2년 뒤 귀화 신청 기회가 주어진다.

 

추방의 공포가 국적 취득 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나고 자란 아우틴(33·가명)은 12살 때 고향을 떠난 뒤 20년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영국에 거주하는 누나가 있지만 비행기를 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서워요, 나갔다가 못 들어올까봐.” 길고긴 긴 난민 심사 기간 동안 늘 불안에 떨었다. 한국인 지인의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아우틴은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지만‘국적’을 받아야만 한국 거주가 확실해진다고 믿는다. 그때까진 가족 상봉도 미룰 참이다.

 

 

난민인정자는 한국에서 원하는 날까지 체류할 수 있다. 다만 F-2 체류 자격을 3년에 한 번씩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에선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곧바로 영주권을 준다. 한국에도 체류 연장을 할 필요가 없는 영주(F-5) 체류 자격이 있긴 하다. 난민 인정 뒤 5년간 한국에서 거주하면 신청 자격이 생긴다. 체류 자격 중 하나일 뿐 권리 보장은 전혀 되지 않는다. 영주 자격을 원하는 난민이 거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영주 자격은, 국민에게 부여되는 거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국외의 영주권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사회권 보장하고 국적 취득 문호 열어야

 

아우틴의 바람과 다르게, 그는 영영 ‘불안’을 떨쳐낼 수 없을지 모른다. 지난해 법무부는 국적 취득에 앞서 영주 자격을 먼저 얻도록 하는 ‘영주 자격 전치주의’ 도입을 위한 국적법 및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경제적 자립 능력 및 한국에 대한 이해 등 준비가 덜 된 외국인의 국내 정착이 늘어날 경우 발생할 문제를 대비한다는 취지다. 법률개정안에서도 영주 자격은 사회적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이러한 영주 자격을 받기 위해서는 생계 유지 및 한국어 능력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이 사람답게 살기 힘든 구조를 방치한 채, 국적 획득의 기회를 더욱 좁히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법률개정안을 보면, 영주 자격 대상에 난민 관련 언급이 없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법무부에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용을 보면 난민은 영주 자격 취득을 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고 설명했다. 영주 자격을 얻지 못하면 한국 국민이 되는 길도 막힌다. 영주 자격 발급 대상자는, 국민 또는 영주 자격자의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 외국 국적 동포, 특정 분야 우수 인력 등이다. 영주권 전치주의가 시행될 경우,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한 한국 거주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귀화 심사에 앞서 까다로운 영주 자격 심사 또한 통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비국민에 대해 ‘단기 체류’를 유도해 사회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펴왔다. 이러한 배제 정책엔 차별과 인권침해 가능성이 수반된다. 사람이 한곳에 오래 머물며 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스스로 일해 생계를 유지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잘 부각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다. 이들은 병역을 제외한 국민적 의무를 지니지만, 많은 사회적 권리에선 배제됐다. 난민을 포함해 ‘장기 체류’ 비국민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주민 유입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려는 한국의 필요가 더해진 결과다. 결국 기존 정책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영주 자격을 가진 비국민에 대한 사회보장 수급권 등을 제도적·현실적으로 보장하고, 오래 거주할 경우 국적 취득의 문호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기 체류 이주민에게 영주권을

 

최현 제주대 교수(사회학)는 “영주권 강화로 많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권을 제외한 모든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는 영주권을 장기 체류 이주민에게 빨리 내주어 인간으로 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한 뒤, 원하지 않으면 국적 취득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원치 않는 난민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국 국적으로 국적을 변경할 예정입니까?”

 

영어로 된 질문이 버마어로 통역되는 순간, 경기도 부천에 자리한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사무실에 모인 버마(미얀마) 출신 난민인정자들이 술렁거렸다. 뻔한 답을 물어본다는 반응 같았다. <한겨레21> 설문조사에 응한 난민 가운데 ‘한국 국적 취득 계획이 없다’고 답한 난민 34명 중 대부분은 버마 출신 민주화운동 참여자다. 이들은 본국의 정치 사정이 나아지는 대로 고향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로 한국 생활 19년째,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버마 출신 아웅틴툰(39)도 이 땅에서 정착할 생각은 없다. 산업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이주노동자 처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권활동가가 됐다. “나이가 들면서 한국이 더 무섭다.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을 고국에 전수하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중국인들 역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이 없다.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은 아니지만, 굳이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지금의 한국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국적 변경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난민도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난민은 출신국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현재 대학에서 공부 중인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 계획이다. 그러나 국적을 취득할 마음은 없다. 정부가 내세우는 조건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민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정확히는 모르지만) 통장에 2천만~3천만원 정도 돈이 있어야 하고 교수 같은 사람들한테 추천서도 받아야 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난민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그만큼의 돈을 모으고 교수를 만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난민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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