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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호 난민'은 한국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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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7-17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8648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5462.html

 

1호 난민은 한국에 없다

 

 

“ㄷ씨가 본국 정부로부터 박해받는 사실은 국제사면위원회 연례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가 귀국시 본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

 

우리 정부가 인정한 ‘난민 1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1년 2월13일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법무부·외교통상부·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담당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난민인정실무협의회’에서,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 출신 ㄷ(당시 26살)씨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1992년 ‘유엔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뒤 내린 첫 난민 인정 사례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난민… 큰 빚 졌습니다”

 

그는 1997년 9월 아프리카의 고향을 등졌다. 법무부는 “ㄷ씨가 당시 반정부단체 조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본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구금·폭행을 당하는 등 신변의 위협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홀로 무작정 건너온 그에게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지내면서 다른 이주노동자처럼 공장에 일을 다니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집 근처 교회에도 나갔다. 교회 사람들은 그를 ‘솔로몬 목사’라고 불렀다. 그러던 그는 2000년 7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낼 수 있었다.

 

▲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난민이 서울 남대문시장 한복판에 서 있다. 국내 체류 난민들의 상당수는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그러나 난민 1호 솔로몬 목사는 지금 한국에 없다. 그는 2004년 법무부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이탈리아로 출국해 돌아오지 않았다. <한겨레21>은 수소문 끝에 지난 7월 말 전자우편으로 ㄷ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을 떠난 이유 등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인터뷰 대신 짧은 답장을 보냈다. “저는 현재 유럽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으며, 제 소명(전도사)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과 정부를 사랑하며, 그들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가 난민 인정을 받은 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세한 이유는 ㄷ씨의 한국 정착을 도왔던 최종성 무봉교회 담임목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솔로몬 목사는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뒤 이탈리아로 피신해 있던 약혼녀를 데리고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정착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몇 년 지내다가, 결국 아이가 아프면서 유럽으로 건너간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죠.” 당시 경기 불황 탓에 이주노동자의 일자리가 줄면서 ㄷ씨도 생계를 이어갈 마땅한 방법이 없어 다른 나라를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ㄷ씨의 경우처럼, 난민 인정 뒤 한국에 정착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난민을 받아들인 지 10년, <한겨레21>이 국내 체류 난민 9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 속 난민인정자 추적조사’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을 떠나 제3국으로의 이주를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응답자 97명 가운데 32%(32명)가 ‘있다’고 답했다. ‘없다’고 답한 이는 61%(59명)였다. ‘있다’고 답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국을 떠나려 한 이유’를 물으니, ‘난민 처우가 더 나은 나라로 가고 싶어서’(20명)라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감시 피해 만든 위조여권이 문제돼 ‘난민 취소’

 

법무부 자료를 보면, 국내 난민인정자 334명 가운데 난민 인정을 받은 뒤 국외로 나가 6개월 이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는 ㄷ씨를 포함해 모두 5명이다. <한겨레21>은 이들 가운데 현재 국외에 나가 있는 아시아 국가 출신 난민 2명의 전자우편과 연락처를 입수해 인터뷰를 위한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 속 난민인정자 추적조사’ 설문조사 과정에서 만난 같은 나라 출신 난민을 통해 이들의 행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들이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난민 인정을 다시 받고 (재정착 프로그램을 활용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도 다른 나라로 가고 싶지만) 아이들도 있고 위험부담이 크다. 그런 것도 다른 나라에 친·인척이나 지인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에는 난민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국내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업무차 말레이시아에 갔다가 한 난민 쉼터에서 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아마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도 우리 사회의 벽이 높다고 판단해 다른 나라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는 현재 유럽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으며, 제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과 정부를 사랑하며, 그들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 난민 1호 ㄷ씨

 

 

이미 받은 난민 지위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국내 체류 난민 가운데 아시아 국가 출신 난민 4명은 2009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만든 여권(위명여권)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난민 인정이 취소됐다. 이들은 본국에서 정치적 사유로 탄압을 받다가 2005~2006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냈다. 이 가운데 3명은 한 가족으로, 남편의 난민 지위가 취소되면서 부인과 자녀도 모두 난민 자격을 잃었다. 출입국관리법에는 “난민의 인정을 하게 된 중요한 요소가 거짓된 서류 제출 및 진술, 사실의 은폐 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난민 인정을 취소할 수 있다”(제76조 1항, 3항)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정부를 상대로 난민 취소를 무효화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고국을 빠져나올 때는 감시를 피해 위명여권·위조여권으로 탈출하는 경우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유엔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의 취지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국가별 공동체·일자리 중요”

 

이처럼 한국 사회가 난민의 정착을 도울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 <내 이름은 욤비> 공동저자인 박진숙씨는 “여러 난민들을 지켜보니, 난민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가족의 죽음, 성폭행 등)가 심하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그리고 본인이 과거와 다른 생활수준에 잘 적응하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정착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김종철 변호사(법무법인 어필)는 “한국 안에 있는 국가별 공동체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다. 자녀가 있는 난민신청자의 경우에는 교육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부수적으로 좋은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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