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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아빠, 학교에 오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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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7-17 작성자 : 유엔난민기구 조회 : 7243

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5460.html

 

아빠, 학교에 오지마세요

 

 

▲ 난민지원단체 ‘피난처’가 마련한 아동음악치료 수업을 받고 있는 난민 가정 아이들.

 

벤자민(가명·남자)은 작은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언젠가 아들은 아빠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친구들한테 엄마는 외국인이지만 아빠는 한국 사람이라고 했대요. 그래서 학교에 오지 말라고….” 16살 아이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종종 벤자민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해요. 시험 성적도 안 좋다고 하고.”

 

8살 제제 국적란에 ‘stateless’

 

아빠는 일생 동안 국적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제3국을 떠돌다, 2000년대 초반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을 받자마자, 타국에 있던 아들 둘을 한국에 데려오려 했다. 그러나 무국적 부자에겐 혈연관계를 입증해줄 서류가 없었다. 유전자 검사까지 한 뒤에야 아이들은 한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아빠는 두 아들이 어린 편이라 낯선 생활에 금방 적응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처음엔 학교가 아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지냐는 주장이었다. 두 달가량 실랑이를 벌인 뒤, 아이는 첫 등교를 할 수 있었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아이가 문제였다. 아들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수업 내용을 좇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아이는 한국 사회에서 흔치 않은 무슬림이었다. 학교 급식에서 돼지고기라도 나올라치면 입에 대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학교에서 아이는 점점 고립됐다. 결국 아이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탈학교 청소년이 된 셈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다문화 학생 예비학교를 운영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다문화’란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인 가정을 말한다. 벤자민네 같은 난민 가정은 ‘다문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벤자민네 아이들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언어 소통’이다. 언어와 문화가 통하지 않으니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공부를 더 해야 할 텐데….” 아빠의 시름은 깊어진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다문화 학생 등 중도 입국 자녀가 정규학교에 배치되기 전에 적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예비학교를 운영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다문화’란 부모 중 한 명은 한국인인 가정을 말한다. 벤자민네 같은 난민 가정은 ‘다문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덟 살 제제(가명)의 외국인등록증 국적란엔 ‘stateless’란 단어가 쓰여 있다. 무국적자란 뜻이다. 그런데 두 살 터울 동생 마크(가명)의 국적은 아빠와 같은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엄마 미아(가명)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마크네 부모가 직접 본국 대사관에 가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에 국적이 부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아 생각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미아네 부부는 정치적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본국 대사관에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마크가 정말 콩고 국적을 취득했는지, 아니면 콩고 정부도 모르는 무국적 상태인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이 ‘괴물’이라 놀려요

 

한국에서 태어난 제제와 마크는 가족 결합 원칙에 따라 난민 지위가 부여됐다. 2004년 미아는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받는 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다. 경제적 압박과 불안정한 지위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제제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무렵,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학교에 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국인에게는 초등학교 취학 통지가 전달된다. 그러나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 자녀는 초·중학교에 입학을 신청해 학교장의 허가에 따라 입학하도록 돼 있다. 미아는 이런 절차를 어디서도 통보받지 못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까봐 늘 걱정이다. 동네 사람들은 제제네 가족을 ‘괴물’이라고 놀린다. 미아는 조금 멀더라도, 외국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학교에 제제를 보내고 있다.

 

7년 전, 벤자민의 두 아들은 ‘꿈’에 대해 자주 말하곤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희망을 틔우던 아이들은 이제 더는 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7년 뒤, 미아네 두 아들의 ‘꿈’은 지켜질 수 있을까.

 

 

난민의 가족결합권

 

기다리는 사이 아이는 성인이 되고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이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틈도 없이, 우선은 함께 살 수 있기만을 바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이 있다.

 

국제법상 난민은 가족결합권을 갖는다. 난민인정자의 배우자와 만 19살 미만인 미성년자 자녀에게는 동일한 난민 지위를 부여하도록 한 원칙이다. 한국 정부도 난민과 난민신청자 사이의 가족관계가 ‘입증’될 경우,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난민 신청 절차를 밟으려면 가족도 한국에 들어와야 하지만, 입국 비자(사증)를 얻는 데 난항을 겪기도 한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무케바(40)는 2년 전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고향에 두고 온 아내·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의 도움으로 그의 가족은 콩고민주공화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비자(사증) 발급을 두 차례 신청했으나 발급이 거부됐다.

 

부족 간 분쟁으로 난민이 된 아프리카 출신 여성도 모국에 남겨둔 아들을 데려오는 데 동분서주했다. 입국 비자 발급이 더뎌지는 사이, 아들은 성인이 됐다. 미성년자가 아닌 난민 자녀는 가족 결합을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이들을 돕고 있는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상태지만, 법무부 1차 심사에서 난민 지위 불허 결정을 받았다”며 “두 사람이 오랜만에 상봉해 기쁨을 나눈 것도 잠시, 아이가 한국에서 함께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한데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원망이 표출되면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대사관에 따라 난민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며 “현재 사증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사증발급인정서 신청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를 난민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증발급인정서 신청 제도란, 외국인이 직접, 혹은 초청자가 외국인을 대신해 법무부에 사증발급인정서를 신청해 발급받은 뒤, 재외공관에 제출하면 비자를 발급해주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아예 모르는 난민도 있었다. 설문조사 참여자 97명 가운데 18명은 ‘가족 결합 원칙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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